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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k the great dream
하나님 알아가기/말씀묵상 - Knowing God, Resembling Jesus

[Daily Bread] 누가복음 16: 14~31

by 푸른신발 2021. 2. 20.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

>> 스스로 정당화 해도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며, 사람들이 좋다해도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 명령과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나의 마음 속 동기를 보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마치 하나님도 속일 수 있는 것처럼, 내 자신을 정당화하고, 내 자신도 속이려 한다.(하지만 사실 나는 안다. 외면하려 할 뿐이지)

나도 바리새인들처럼 돈을 사랑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높아지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위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게 있는 것으로 남을 돕는 데에 사용하기 보다는, 더 가지려고 지키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나는 부자와 나사로 중 굳이 말하자면 부자에 가깝지 않을까? 천국에서 지옥에 있는 자를 도와줄 수는 없지만, 아직 이 세상에서는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들이라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사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고 있다. 어리석게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 -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말고, 높아지고 더 가지려 하지 말고 지키려 말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타인 - 오늘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기

 

기도

명령과 기준되신 하나님, 저는 세상의 눈으로 내 보기에 좋은 것들을 더 가지고 지키려는데 인생을 다 쏟으며 삽니다. 나만 생각하면서 여러가지로 정당화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 마음속 동기를 보십니다. 주님이 주신 시간과 힘을 오직 나만을 위해 쏟다가 주님께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이 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그곳을 향해 나의 시간과 힘과 재물을 사용하며 주님 앞에서 카운트 되는 복된 인생 살게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앞서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와 하나님과 돈을 같이 섬길 수 없다 하시는 이야기를  비웃는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들 눈에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너희의 마음을 아신다.  

사람들 가운데서 높이 여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미워하시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 그 마음 속에 돈을 사랑하며 사람들 앞에서 깨끗한 척 정결한 척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는 분이시라 하신다. 

>> 사람들이 높이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는 미워하신 바 되시는 것이라 하신다.  (돈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를 말씀하시는 것인가? 돈과 명예...사람들이 높이 보는 것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살아가는가?)

 

또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의 때까지 율법과 선지자들이 선포되었으나, 이제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가르쳐지고 있다.

율법서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한 획이라도 사라지는 것보다 천지가 사라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복음이 선포되나, 율법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씀이신가?)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가는 것이나, 이혼한 여인과 결혼하는 자나 다 간음하는 것이다. (그 율법 중 하나의 예를 들으신 것일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신다. 한 부자 집 앞에서 상처에 뒤덮혀 그 상에서 떨어진 것이라도 먹고자 구했던 거지 나사로가, 결국 죽어 아브라함 편에 올라가고 부자는 죽어 묻혀 지옥에 간다. 부자가 아브라함을 올려다 보고 나사로를 보내서 손끝에 한 방울의 물을 찍어 내 불가운데 고통받는 내 혀를 시원케 해 달라고 빈다.

아브라함이 말하길 네 평생에 너는 좋은 것을 다 받았으나, 나사로는 좋지 않은 것으로 받았으니 그는 여기서 평안하고 너는 거기서 고통 받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이에 큰 틈이 있어서 서로 왕래할 수가 없다. (왕래할 수는 없는데, 볼 수는 있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지옥에 있는 자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고통이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자는, 그러면 내 아버지의 집에 사람을 보내 주소서 다섯 형제들에게 말해 이 고통의 자리에 오지 않게 경고해 달라 부탁한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모세와 선지자가 이미 있는데, 그들에게 들을 것이라 하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 다시 말하니, 모세와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죽음에서 일어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 한다. 

>> 이 땅에서 좋은 것을 누리고 아픈 자를 돌보지 않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 같다. 

>>  그런데, 어떻게 우화 속 대화의 내용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지? 마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지옥에서 천국을 볼 수 있고, 말을 걸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무섭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부자들의 생활을 다 보지만, 그것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다른 것은, 여기는 그 사이에 넘어갈 수 없는 틈이 있지는 않다. 손을 내밀 수 있는 기회가 있다.)

>> 죽은 자를 보내서, 자기 가족들이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데.. 모세와 선지자 얘기를 안들은 자들은 소용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마치 그 요청에 답하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