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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k the great dream
하나님 알아가기/말씀묵상 - Knowing God, Resembling Jesus

[Daily Bread] 창세기 50:15~26

by 푸른신발 2020. 9. 25.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선하신 하나님, (바꾸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오늘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사랑의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나에게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모든 것을 바꾸셔서 당신의 선한 일을 이루신다.

그 가운데 나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존귀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삶의 수많은 일을 통해 나의 존재를 빚어 가신다. 하나님 자리에 앉지 않고 진정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고, 눈 앞의 상황 겪고 있는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든 내 뜻대로 되기를 힘쓰며,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내 자신과 내 주변에 이루어지는 것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오늘 내가 하나님 되어 결정하지 않고, 나를 화나게 하고 악하게 하는 자에게 복수하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로 믿고,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이루어진 그 현실에 오늘의 삶을 맞추고 살아가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은 나에게서 머무르지 않고 내 이웃, 더 많은 사람을 향해 있음을 기억하며, 나도 그 선하심을 흘려 보내기

 

기도

선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그 선과 사랑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눈 앞의 상황만 보며 하나님 자리에서 애쓰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제게 믿음을 주셔서,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이루어진 그 약속에 오늘의 내 모든 삶을 맞추고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내 삶 속의 고난도 성공도 하나님의 사랑의 구속의 섭리 속에 의미가 있음을 알고, 언제나 나, 나, 나밖에 모르는 이 어찌할 수 없는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눈을 들어 주변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흘려 보내며 주의 손과 발로 살아가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죽으니, 요셉이 자신들에게 복수할까 두려워하여 아버지의 유언이라 하며, "형들이 너에게 악을 행하였지만 용서하라 하셨다."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이 울었다. 

그래도 두려워 직접 찾아가 자신들은 당신의 종이라 한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얘기하며, 형들은 악을 꾀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셨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형들과 그 자손들을 돌볼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 요셉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요셉도 당신들의 "악"이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형들의 행위에 깊이 분노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악으로(아니 정당한 복수) 갚지 않았다.  그 다음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당신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다'고.. 그는 자신의 삶의 고난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자산의 삶의 여정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뒤에 하나님의 손이 있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저 자기 한 사람의 안녕과 성공을 위함이 아니라 더 크고 더 많은 사람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은 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 그리고 그 사랑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아는 자, 자신의 인생의 소명/이유를 깨달은 자이기에 개인적 감정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으로 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형들이 살기 위해 했던 말들을 보면, 계속해서 자신들을 '악하다'라고 한다.. 그 생각, 사실 마음 속에 평생동안 가져온 생각 아니었을까? 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그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아무도 모른다 해도 내 자신이 나를 보고 있으니까.. 

 

요셉은 110살까지 살며, 증손주까지 보고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형제 므낫세의 자녀 마길의 아들들도 자신의 자녀로 돌본다. 

그렇게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 형제들에게 남기는 유언은,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에게 오실 것인데, 그 때 나의 유골을 반드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데려 가라'는 것이었다.  

--> 요셉은 애굽에서 거의 신과 같이 추앙받으며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을텐데, 그의 마음은 애굽이 아닌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 있었다. 그의 생각이 늘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 이 땅을 살아간다.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 나라에 있는가, 아니면 이 땅에서의 부요함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이미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다. 그 땅은 비록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현실이다. 요셉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가져와 진짜로 만드는 것, 보이지 않으나 이미 이루어진 약속에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정렬시키는 것. 그것이 믿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