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관점)
Good-Bad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24)
압살롬을 다시 불렀으나 그를 보지 않는다. 완전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Good news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33)
요압이 대신 왕께 나아가 압살롬의 얼굴을 보기를 간청한다.
Good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33)
다시 아들을 만나 입을 맞추고 관계가 회복된다.
다윗은 압살롬을 보고 싶어 다시 불렀지만, 그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집으로 보낸다. 그리고 두 해 동안이나 보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피하고 싶었을까? 다윗은 자신의 딸 다말이 수치스런 일을 당했을 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암논을 죽게 만드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압살롬이 돌아오게 하는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고, 돌아오게 했으나 또 얼굴을 보지 않고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언제나 해오던 방식으로 같은 모습으로 행할 때,
바깥으로부터의 도움이 개입할 길이 차단된다.
(압살롬의 관점)
Good-Bad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30)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하는 압살롬
Good news
없다.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곳에 외부의 도움이 작용할 수 없다.
Good
없다. 결국 원하는대로 다윗의 얼굴을 보고 환영을 받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기에 그것은 진정한 화해가 될 수 없었다.
압살롬은 3년의 시간을 그술에 도망가 살았다. 그리고 요압의 도움으로 돌아왔다.
자신에게는 이유가 있었지만, 아버지 다윗에게는 분명 잘못한 죄가 있었다.
그러한 죄책감이 있었다면 다윗이 자신을 보려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물론 두 해라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압살롬은, 요압을 통해 풀어가 보려 한다. 그런데 요압마저 쉽게 움직이지 않자, 밭에 불을 지르는 범죄를 저지른다.
왕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쓴다.
그 자리에 복음은 없다. 결국 다윗을 만나게 되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기에 감사도 없고, 감동도 없다.
기도
하나님,
나의 습관대로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게 하소서
나의 힘으로 살게 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알아가기 > 말씀묵상 - Knowing God, Resembling Jes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ily Bread] 사무엘하 15:24-37_하나님의 뜻을 앞에 두는 자 (1) | 2022.10.14 |
---|---|
[Daily Bread] 사무엘하 16:13-23_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사는 삶 (0) | 2022.10.13 |
[Daily Bread] 사무엘하 14:1-20 (0) | 2022.10.10 |
[Daily Bread] 사무엘하 12:15-31_용서와 사랑의 하나님 (1) | 2022.10.07 |
[Daily Bread] 사무엘하 12:1-14_죄의 드러남이 축복. (0) | 2022.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