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희미하게라도 빛을 인식하던 한 쪽 눈 마저 더이상 기능하지 않아 세상은 캄캄하다.
왼쪽 몸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이고,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나마 조금씩 움직여 볼 수 있는 오른 쪽 몸도 감각이 무디기는 마찬가지고 움직임도 느리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 1m가 채 안되는 화장실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더듬으며 가려 하면 3-4분의 시간이 걸린다.
캄캄한 중에 둔한 감각의 손에 수저를 들고 밥을 먹으려면 1시간여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같은 속도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사는 남자.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
아빠가 낙상으로 인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신지 열흘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한 번의 수술도 했지만, 여러가지 상태가 좋지 못하시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시작해 십오년여 가까운 신장 투석.
그 이후 신장이식을 하셨지만, 부작용인지 시력을 잃고 뇌출혈로 쓰러지신 이후 또 2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잘 움직이지도, 보시지도 못한 상태로 지낸 20년 간
아빠는 침대에 누워 주무시거나, 식사 시간에 힘겹게 식사를 하시거나, 거실의 정해진 의자에 앉으셔서 라디오나 티비를 들으셨다.
자식들이 나이들어가는 모습,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도 볼 수 없고..
가끔씩 가서 인사드릴 때나 식사할 때 외에는 주변에 사람들도 많지 않으셨던 시간들..
얼마나 지루하셨을까.. 무슨 낙으로 지내셨을까.
포기하셨을 법도 한데, 쓰러지시기 전까지도
남의 도움을 최소한으로 받으며 자신 만의 루틴을 지독히도 고수하면서
버티셨다. 그래. 버티셨던 것 같다.
자신이 죽으면 홀로 남게 되는 엄마에게나 당신의 자식들에게
없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존재하는 편이 더 나으니, 어떻게든 길게 버티자라는 생각 아니셨을까..
그렇게 애쓰신 아빠..
이제 평안한 쉼을 얻으시면 좋겠다... 머리로는 생각하는데,
다시 깨어나셔서 단 몇 마디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 섞인 마음이 잘 포기가 안된다...
20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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