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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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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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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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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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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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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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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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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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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세상을 정리하시고, 그 안을 아름답게 채우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작업을 하신다.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특별한 이유가 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보면 분명 이 창조의 하이라이트가 엿새째 벌어지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선, 닷새째까지의 창조에는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 엿새째의 창조에는 하나님이 작가의 의도를 밝히신다. "자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를 그 세상 안에 지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델은 하나님 자신이셨고, 그의 존재의 목적도 하나님이 하시는 역할을 닮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땅에서 하나님과 같이 다스리는 존재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남녀를 구분하신 것도, 하나님의 어떤 존재 양식을 닮게 하신 것일 수도 있겠다. 삼위의 하나님처럼 말이다)
그렇게 만드시고는, '복을 베풀어' 주시는데, 그 복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심으로 실현된다.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말씀을 거시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거꾸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과 소통하는 대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그 복의 내용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것이었다.(생육과 번성) 그리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것이었다. (다스림=돌봄) 그리고 생물들이 서로가 아닌 식물들을 먹거리로 주신 것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멋지고 경이로운 세계를 지으신 이유는, 어쩌면 그 가운데 번성하는 당신을 닮은 존재들과 소통하시면서 하나님과 뜻을 맞추며 그 세상을 다스리시는 즐거움을 누리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상상과 기대를 하시면서 엿새째까지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셨기에, '다 이루셨다' 생각하시고 "참" 좋았다' 라고 하시면서 쉼을 가지시며 그 날을 복되게 하신 것 아닐까 상상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과 참 소통을 하도록 만들어진 유일한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을 거부하거나 그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이 멋진 세계를 만드신 모든 수고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 되는 것일 것 같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시면서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번성하며 이 땅을 다스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과 소통하며 살아갈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하나님과 소통하기에 힘을 쓰고 있는가.. 아예 소통에 관심이 없거나, 분명이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 '불통'의 피조물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창조 질서, 창조의 의도에 어긋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가. 하나님과 소통하지 않거나 불통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존재라면, 결국 자신 밖에 없을테니.. 다스림과 돌봄이라는 생각조차 안하고 살아갈 것이고..
창조의 이야기를 보며, 다시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1.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 소통은 듣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청각으로 듣는 것을 말하지 않고, 듣고 그대로 따른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 그에 응답하는 소통의 사람이 되자.
2.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것.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이 세상 가운데 흘러가게 하는 것. 다스리는 자가 되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화룡점정 함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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