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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k the great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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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Bread] 창세기 44:1~34

by 푸른신발 2020. 9. 1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분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으로 불러오신다]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내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그리고 이루고 계신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방식은 아니다. 나를 바꾸어 가시면서 그 일을 이루신다. 날 먼저 바꾸어 주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그 수백만가지의 경우 수 중에, 하나님은 '나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의 수를 택하신다. 내 입장에서만 보면.. 하나님의 관심사는 <나>이다. 나의 회복, 나의 변화, 나의 구원. 내게 복주시는 것. 

 

요셉은 이렇게 형제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고(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도 찾지 않았으니..)

만난 후에도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분명히 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잘 해주고 싶은 마음,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행동 속에 보여지기도 하나, 아직 베냐민 외에는 형들에게는 냉랭한 모습이다.) 

요셉이 주도적으로 가족들을 오게 하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베냐민을 보고 싶었던 것이 출발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과 갈팡질팡하는 요셉의 행동을 사용하여 형제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고, 이 가정이 깊이 묻고 덮어 두었던 일들을 드러내시고, 요셉과 그들의 굳은 마음을 녹여가시며 회복시키시고, 또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의 계획에 무관심할 때가, 또 반대로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크게 보일 때가 있다. 아니 그 일을 내 야망으로 만들 때가 있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때, 나도 높아지고 싶고, 나도 자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그러기에 나는 결과를 보고 싶어 조급해 하고, 하나하나의 과정, 사람들과의 관계 등은 소홀히 여긴다. 어쩌면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만나는 사람들, 내 곁의 사람들과의 관계. 어쩌면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그 결과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고. 그것은 꼭 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이루실 수 있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나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그 단 하나의 일은.. 바로 내가 변화하는 것이다. 나와 그 누군가의 엉켜져 있는 부분을 푸는 것이다.(아니 어쩌면 이것 조차 나 없이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손길 앞에 반응하며, 변화하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많이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 일 뒤에 숨지 말자. 일해야 한다며 불편한 것을 돌아가지 말자. 일 속에서 내가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사람들'일 지도 모르겠다....완벽하지 않아도, 요셉처럼 내 마음 다 정리 안 되어도.. 부딪히고 이야기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정리시켜 주실 수도 있으니.. 너무 피하지 말자.  

 

 

그렇게 형제들과의 식사를 끝내고, 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요셉은 청지기를 시켜 

곡식 값을 다 다시 그들의 자루에 넣고, 그의 은잔 하나를 베냐민의 자루에 넣도록 시킨다. 

--> 무슨 생각이었을까? 베냐민을 더 보고자 함이었을까? 가뭄의 때가 더 남았으니 어차피 다시 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형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직까지도 형들이 미웠던 것일까? 

어쩌면, 요셉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보내면 다시는 베냐민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이 행동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성을 떠나자 청지기에게 시켜 그들을 좇아 은잔을 찾게 한다.

형제들은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게 나오면 종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 지나치게 자신의 의를 자신하고 장담하는 것은 아주 지혜로운 길은 아니다. 

결국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오게 되고, 

형제들은 슬퍼하며 다 같이 요셉에게로 향한다. 

--> 형제들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베냐민을 위해 다시 위험으로 돌아간다. 베냐민은 야곱의 사랑을 받던 요셉이 죽은 후, 야곱의 사랑을 이어 받은 자이다. 이제는 요셉에 대한 상처로 더욱 강해진 집착같은 애정. 형제들은 요셉에게 그랬듯이 베냐민도 꼴보기 싫지는 않았을까? 베냐민 조차 제거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여기서의 행동을 보면, 이미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야곱이 슬퍼하며 살아온 20년을 이들도 보았고, 서로 말은 안 했을지라도 마음에 많은 짐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유다는...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이 있기에 더욱 나서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한다. (책임감이 리더쉽을 만드는구나) 

 

유다가 나서서, 우리가 다 같이 종이 되겠다 하니, 

요셉이 베냐민만 종이 되면 된다고 한다.